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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과 엔지니어링 단어하나의 어감의 차이...

일루와봐라 2019. 3. 2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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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당골]우수용역업자]

 

상위 5위권 안에 들어가는 엔지니어링사 회장실에 각종 상패가 즐비하다. 그 가운데 한 발주처로부터 받은 '우수용역업자' 상패가 눈에 띈다. 우수용역업자, 해석하자면 몸을 써 단순한 도면을 우수하게 제작하는 者다. 그 회장은 "발주처에서 주니까 받기는 받았지만, 우수용역업자라는 문구를 볼 때마다 내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고 했다.

흑백분리주의가 여전한 1962년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그린북'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는 단기고용한 백인 운전기사 발레롱가와 함께 미국 남부투어공연을 떠난다. 돈 셜리는 1945년 보스턴팝스와 차이코프스키 B플랫 마이너를, 1년 후 런던필과 세기의 공연을 펼쳤다. 이후 시카고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클래식으로 다시 돌아온 그의 집이자 작업실은 카네기홀 자체였다. 대통령 일가를 비롯해 미국사회 주류인 앵글로섹슨계-WASP와 끈끈한 유대를 가지고 있는 그는 백인보다 더 백인 같은 흑인이었다.

하지만 남부순회공연에서 그의 멘탈은 산산이 부셔진다. 남부백인들은 그를 주빈으로 초대하고 피아노공연에 감동해 찬사를 보내지만, 분리주의에 근거해 화장실은 예전 노예들이 썼던 곳을 권했다. 백인전용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하지만 겸상이 되지 않아 식사는 흑인지정 식당에서 한다.

SOC산업에서 엔지니어링의 위치도 그린북에서 돈 셜리와 별반 다를 것 없다. 업계에서 말 좀하는 사람들은 고부가가치다 지식지반이다 SOC의 핵심은 엔지니어링이라고 어느 자리에서나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강조한다. 하지만 실상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용역-用役일 뿐이다. 돈 셜리의 피아노연주에는 찬사를 보내지만 겸상은 할 수 없다는 백인들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전 국회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용역'을 '엔지니어링'으로 바꾸자는 건설기술진흥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박선호 국토부 차관의 반대에 부딪혀 부결되고 말했다. 박 차관은 "용역의 의미를 엔지니어링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현상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국토부 또는 발주처 입장에서 굳이 '용역'이라는 하대하기 좋은 말을 새로운 말로 만들 필요가 없다. 게다가 엔지니어링이란 말은 이미 산업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국토부에서 그것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또 언제나 을-乙인 엔지니어링업계가 용역이란 말을 바꾸지 않았다고 해서 갑-甲인 국토부에게 무엇이라 말하지 않을게 뻔하므로 바꿀 필요가 없다 정도가 아닐까.

실제 이 법안 심사 당시 엔지니어링 관련 협단체 관계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법안을 주도했던 건설기술관리협회 측은 지난해 '용역'의 대체어를 찾기 위한 협의를 진행했지만 발주처, 엔지니어링사 등 각 주체별 의견이 다 달라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대를 당하고 있는 엔지니어링사에게만 물어야지, 하대를 하는 발주처까지 물으니 당연이 의견이 취합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에 반해 건설은 '건설업자'에서 ‘건설사업자’로 바뀌었다. 위상이 달라졌으니 대접도 달라지는 것이다. 여전히 공무원>건설사>엔지니어링사의 카스트제도가 아직 깨지지 않은 셈이다. 또 하층민을 대표하는 이익단체도 하층민 스스로도 아직 우리는 그 정도가 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책하는건 아닌가 싶다. 사실 자책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실제는 관심이 없다.

엔지니어링사 4,000개, 엔지니어 25만명이다. 민주주의 역시 표 아닌가. '깨어있는 엔지니어의 조직된 힘'이 선행돼야 엔지니어링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밥먹여주지 않는다. 참, 이번 법안심사에서 '업자'가 '사업자'로 바뀌었으니 앞으로는 우수용역사업자로 신분이 한 단계 상승된 것은 축하할 일이다.

정장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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