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최대 52시간 노동을 강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지 3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52시간 노동은 고난의 행군으로 산업화도 어느정도 이뤘고, 저녁이 있는 삶도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정책이다. 이제는 선진국처럼 일자리도 분배하고 여가도 즐기며 사는 것도 맞지 않나 싶다. 엔지니어링분야도 고된 노동에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야근, 휴일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턴키/민자 합동사무소는 악명이 높기로 유명했다. 주당 100시간 이상의 야근 그리고 철야로 엔지니어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몸 망가지는 것도 문제지만 제대로된 인간관계와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엔지니어링업계를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가 합사근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정부는 52시간 노동 시행 이후 주요 발주처를 중심으로 합사에 대한 불시점검을 단행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턴키공사 불공정관행 개선과 기술형입찰 설계시 근로기준법 준수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서울~세종간 도로공사 합사의 불은 밤이나 주말이나 꺼지지 않고 있고, 새만금청의 남북도로 턴키합사는 근무일지까지 허위작성하며 주 100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한정된 시간과 낮은 대가 그리고 무한경쟁체제 안에서는 고강도근무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경영자 입장은 일괄적인 52시간 노동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경영자 대부분이 엔지니어 출신이다보니 후배들의 고강도 근무를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수주여부에 따른 들쭉날쭉한 과업, 늘어난 설계기간에 비해 늘지않는 엔지니어링대가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써 노동을 하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도 이상하고, 노동에 대한 대가도 담보되지 않는 것이 더더욱 불합리라는 이야기다. 대안은 역시 탄력근무라는게 공통된 의견이다. 1년이 52주고 40~52시간이 근무시간이니 1년에 52×52 즉 2,704시간이 최대 근무시간이고, 평시에는 2,080시간이다. 턴키합사에 업무량이 높아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했다면 과업이 끝난 후 이에 대한 휴가와 수당이 주어지면 합당한 처사다. 이를 위해 주단위로 근무시간을 계산하지 말고 1년 단위로 근무시간을 조정하자는 것이다. 설계업무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처럼 딱 잘라 시간을 계산하는 분야가 아니라 그렇다. 국토부가 정부의 시책이라는 이유로 턴키합사를 단속해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보다 고강도 노동을 강요하는 저비용구조의 설계대가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다. 고품질을 천명하는 턴키설계가 대가는 일반설계에 60~70%니 이 사단이 나는게 아닐까. 보상없이 희생만 강요해서야 52시간 근무는 성공할 수 없다. 턴키설계 기간을 늘리는만큼 엔지니어링대가도 늘리고, 근무시간이 늘어나는만큼 휴가기간과 월급도 늘리는게 현재로선 답이 아닐까. 그에 앞서 엔지니어링을 그저 단순작업으로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계도, 호구도 아니지 않나.
정장희 기자 | news@engdaily.com < 저작권자 © 엔지니어링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